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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상을 수상한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가 2014년 가자지구 침공에 찬성한 인터뷰 전문

독일 방송사 <도이치 벨레(Deutsche Welle)>가 2014년 7월 30일에 아모스 오즈와 한 영어 인터뷰의 스크립트를 한글로 번역해 올린다. 인터뷰에 응한 아모스 오즈는 노벨문학상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는 이스라엘의 국민 작가이자 서구나라들에서는 '이스라엘의 양심'으로 불리는 유명인사다. 지금까지 오즈는 '가자지구 공습에 반대'하는 것으로 두루뭉슬하게만 알려져 온 터다. 이 인터뷰는 제법 세밀하게 파고드는 인터뷰어의 질문들 덕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그의 입장을 좀 더 분명하게 확인시켜줄 발언을 두루 담게 되었다. (2014년 가자지구 침공에 대해 "정당하지만 과하다"라고 답변한 것이 특히 그러한데, 의아하게도 많은 서구 언론사들은 이 발언을 인용하면서 그가 침공에 "반대"했다는 기사 제목을 뽑았다.)

오즈는 문학 활동 외 정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평화주의'(흔히 '이스라엘 자유주의', '좌파 시오니즘'과 중첩된다)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오즈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대규모 군사 행동을 할 때마다 세계 유력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나 조명을 받아 왔다. 마찬가지로 이 인터뷰는 2014년 여름에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한 채 폭격과 지상 작전을 이어가는 와중에,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천 명을 넘어선 시점에 성사되었다(팔레스타인 측의 최종 사망자는 2200여명이다). 

오즈의 발언들을 곱씹어보면 이스라엘이 '평화 운동가'의 긍정적 이미지를 앞세워 '평화'와 '공존' 개념을 독점하고 나아가 평화의 실현 가능성을 '납치'하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사실 오즈의 견해나 입장은 아래에 보면 알겠지만 특별히 평화주의랄 것도 없고, 오히려 지난 수십 년간 팔레스타인 점령을 묵인하거나 옹호하고 직접 점령에 동원되거나 기여해 온 대다수 이스라엘 국민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할 뿐이다. 심지어 그의 평화에 대한 이해는 '전쟁 없이 평화도 없다', '정의를 위한 전쟁', '부수적 피해'와 같은 제국주의자들과 군사주의자들의 전통적인 슬로건과 완전히 일치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근본 없는 평화주의자이다보니 오즈는 '평화'라는 이름 아래서도 자주 구체적인 입장을 변경해 왔으며 이 인터뷰에서는 종종 동문서답도 한다. 일단 지금은 주의깊게 읽어야 할 문구들에 빨간색으로 표시하는 데 그치고 다음의 코멘트만을 달아둔다. 


- 오즈와 그가 1978년 창립에 참여한 이스라엘 단체인 <Peace Now>는 이스라엘의 일부 군사 행동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주 이스라엘 우파들의 공격을 받는다. 즉 이스라엘 기준에서는 오즈 역시 위험을 감수한 채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못 된다. 그것은 더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며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이스라엘인들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니다.

- 인터뷰 전반에 잘 드러나듯 오즈는 점령 종식을 골자로 하는 '두 국가' 해결안을 지지한다. 그러나 실제 점령의 종식과 팔레스타인의 독립 과정에서 중요한 요건이 될 국경 및 난민 문제라든가 최근 수년째 첨예한 갈등의 배경인 동예루살렘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한다. 다시 말해 오즈가 대표하는 '이스라엘 평화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장기적인 '공존'보다는 당장의 폭력 잠재우기 용의 '분리'에 가깝다.

- 오즈가 '두 국가' 해결 과정에 있어 팔레스타인인들을 단지 구슬리거나 이용해야 할 상대로만 볼 뿐, 합의나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는 않는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기본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시민사회를 우습게 안다. 이와 관련해 그는 2010년 <LA타임스> 기고에 다음과 같이 적은 바 있다. "하마스는 단순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고립과 좌절에서 자라난 절망적이고 광신적인 아이디어다. 아이디어는 무력으로 격퇴시킬 수 없다." 이러한 발언은 판단력을 잃고 무언가에 홀려 하마스에 투표하거나 목숨을 걸고 저항에 나서는 우매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다름 아닌 이스라엘이 구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 다수의 팔레스타인인들도 '두 국가'의 성립을 현실적인 해결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오즈와 같은 '이스라엘 평화주의자'들이 원하는 '두 국가'의 실현 과정은 꽤 분명하다. 1)점령지에서 이스라엘 군경이 벌이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적인 폭력과 학대 행위는 일단 유지하면서, 2)팔레스타인 측이 먼저 무장해제 및 저항 중단을 이행하고 이스라엘 정부에 협조한다면, 3)점령지에서 군경 및 유대인 정착민 철수를 고려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인터뷰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두 국가', '공존', '평화'의 의미를 선점하려 드는 것 또한 점령을 영속화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 인터뷰에서 오즈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의해 겪고 있는 군사점령, 강제추방, 가옥철거, 이동제한, 일상적 학대와 살해, 심지어 대규모 폭격이라는 실제적인 폭력 상황은 과감히 논외로 하고, 가자지구 국경이 봉쇄된 상태에서 무기, 자원, 인력의 이동에 이용되는 터널(한국 안보교육의 주인공이기도 한 '땅굴')의 존재와 가자지구의 무장 상태 자체를 유난히 못견뎌 한다. 그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대피할 방도나 겨를도 없이(*실제로 경보도 없이) 미사일 공격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마치 하마스를 지지한 비도덕의 대가인 것처럼 묘사하는 한편, 이스라엘인들이 로켓 경보를 받고 피난소로 대피해야 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매우 힘주어 이야기한다.

- 그가 이스라엘인을 가리켜 번번이 '유대인'이라고 칭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전체 이스라엘 시민권자 수의 20%에 달하는 아랍인을 비롯해 아프리카계나 베두인 주민들의 존재를 대놓고 무시하는 인종주의적 태도이다. 

- 이런 사람을 한국 문학계는 이스라엘의 '평화 운동가'라고 소개하면서 얼마 전 제5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지난 15일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그의 소설 역시 같은 방식으로 홍보되고 있다(<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 2>, 문학동네). 여기서 박경리문학상을 수여하는 재단인 <토지문화재단>이 일제치하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수상을 위해 내한한 오즈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박경리의 소설세계에서처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역시 한 쪽이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 조금씩 옳고 조금씩 나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박경리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과거 일제와 조선의 관계 역시 누가 옳고 그른 관계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읽힐 수 있는 위험 발언이자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모욕적인 언사이다.
 
'조선-일본'과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관계는 서로 다르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 과거 일제가 조선을 점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1967년 이래로 팔레스타인 영토(서안지구, 가자지구, 동예루살렘)를 점령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사회에서 여러 차례 객관적 상태로 인정 및 재확인되어 왔기에 그 근거가 되는 결의 및 권고의 이름을 첨부한다. *읽는 법: 결의안 호(채택 연도)
  • 유엔안보리 결의안: 237 (1967), 242 (1967), 248 (1968), 252 (1968), 258 (1968), 259 (1968), 267 (1969), 271 (1969), 298 (1971), 338 (1973), 339 (1973), 368 (1975), 446 (1979), 452 (1979), 465 (1980), 468 (1980), 469 (1980), 471 (1980), 476 (1980), 478 (1980), 484 (1980), 497 (1981), 500 (1982), 592 (1986), 605 (1987), 608 (1988), 636 (1989), 641 (1989), 672 (1990), 673 (1990), 681 (1990), 694 (1991), 726 (1992), 1073 (1996), 1397 (2002), 1515 (2003), 1850 (2008), 1860 (2009). 
  • 유엔총회 결의안: 2253 (ES-V) (1967), 2254 (ES -V) (1967), 3236 (XXIX) (1974), 3237 (XXIX) (1974), 32/5 (1977), 33/113 (1978), ES-7/2 (1980), ES-9/1 (1982), 37/135 (1982), 38/144 (1983), 46/47 (1991), 46/76 (1991), 46/82 (1991), 50/84 (1995), 50/129 (1995).
  • 기타 전쟁범죄 사실 확인: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안 S-9/1 (2009), 유엔진상조사단의 보고서 '골드스톤 보고서' (2009), 국제사법재판소 판결 (2004)
  • 점령에 대한 "저항의 권리" 명시: 헤이그 협약 (1899, 1907), 제네바 의정서 (1925), 유엔헌장 (1945), 세계인권선언 (1948), 제4차 제네바 협약 (1949), 추가 의정서 I & II (1977), 식민지독립선언 (1960), 기타 유엔총회 결의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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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번역자 추가


OZ: 인터뷰를 좀 특이하게 시작하고 싶다. 독자들과 청취자들에게 질문 한 두 개를 던지며 시작해도 될까?

- 그래라!

OZ: 질문 하나. 만약 길 건너 당신의 이웃이 발코니에서 무릎에 아이를 앉힌 채로 당신네들 어린이집을 향해 기관총을 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질문 둘. 만약 당신의 이웃이 길 건너 어린이집에서부터 당신네들 어린이집 쪽으로 터널을 뚫고 나와 당신의 가족을 납치하거나 당신의 집을 날려버리려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오즈가 가정하는 이런 일들은 이번 공습에 앞서 하마스에 의해 저질러진 사례가 없다.)

- 2006년 2차 레바논 전쟁(*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해 1200여명 살해)과 2009년 가자 공습(*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침공해 1400여명 살해) 때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지금의 가자 공격을 지지한단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나? (*오즈는 2006년 레바논 침공 당시 "이스라엘의 확장과 식민화를 위한 전투가 아니다", "레바논 민간인 피해가 있을 수 있으나 헤즈볼라를 주요 타깃으로 삼는 작전이니만큼 이스라엘의 평화운동은 이러한 자기방어를 지지해야 한다"라면서 공개적으로 침공을 지지했다. 2008년 가자 공습 당시에는 공습을 지지하는 서명서에 싸인했으나 2주 뒤 돌연 휴전 협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폭력의 책임은 하마스에 있으며 하마스가 무고한 가자 주민들을 죽이는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OZ: 그건 아니다. 나는 무분별한 군사적 대응이 아닌 제한적 군사적 대응만을 지지한다. 2006년에도 그랬고, 이전 가자 전투 때에도 나중에 입장을 그렇게 바꿨다.

- (*무분별한 대응과 제한적 대응의) 구분선은 뭔가?

OZ: 터널을 파괴하고 하마스만을 타깃으로 정확하게 타격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 터널은 위치를 정확히 알아내고 딱 맞게 가격하기가 어렵지 않나? 보통 터널 입구는 건물들 안에 숨어 있다. 결국 집집마다 수색작전을 벌여야 하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생긴다. 민간지역에 설치된 로켓발사대를 파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OZ: 안타깝게도 무릎에 아이를 앉힌 이웃이 어린이집을 향해 총을 쏘는 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희생을 피할 길은 이 세상에 없다.

- 그 무릎 위 아이 비유가 진짜 적절하다고 보는가? 가자는 인구밀도가 높고 하마스가 민간지역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OZ: 맞다, 바로 그게 하마스의 전략이다. 이스라엘에게는 패-패 상황(*어떻게 되든 불리한 상황)이고 말이다. 이스라엘 희생자가 많을수록 하마스에게 유리하고,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많을수록 또 하마스에게 유리하다.

- 당신 기준에서 현재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은 제한된 작전인가 아닌가?

OZ: 어떤 부분들에서는 과하다고 본다. 지상 작전으로 정확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스라엘 군이 가자에 입힌 타격들로 추론하자면 나는 일부분에 있어서 지금의 군사행동이 과하다고 생각한다. 정당하지만 과하다는 것이다.

- 그래서 당신의 제안은 뭔가?

OZ: 팔레스타인 대통령과 접촉해 '두 국가' 해결안과 이스라엘-서안지구의 공존을 위한 조건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각각 수도를 두고, 영토 변경에 합의하고, 서안지구 내 유대인 정착촌들을 대부분 철수시키는 내용들을 말한다.
서안지구 사람들은 번영과 자유 속에 살고 있다. 나는 루마니아인들이 차우세스크(*1989년 대중시위와 쿠데타 과정에서 처형된 독재자)에게 했듯이 언젠가 가자 사람들도 하마스에게 똑같이 할 거라 믿는다. 이건 시간 문제일 뿐,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자 사람들이 자신의 형제자매가 서안지구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번영을 매우 질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이다. 하루이틀 안에 이뤄질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 당신은 이스라엘에 적대적이지 않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상상할 수 있는가?

OZ: 당연하다.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딴데로 갈 수 없다는 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불쾌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팔레스타인인들이 여기에 산다는 점을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지금 이 현실은 달콤한 허니문이 아니라 공평한 이혼의 조건에 가깝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갈라섰을 때처럼.

- 지금 얘기는 마치 팔레스타인 국가가 경제는 불안하고 또 정부(*1993년 오슬로협정을 통해 수립된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급진 조직들을 제재하지 못할 만큼 취약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을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 이용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OZ: 그 문제(*정권 유지)는 새로운 팔레스타인 국가가 이스라엘, 부유한 아랍 나라들, 기타 다른 나라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지지와 물적 도움을 받는가에 달려 있다.

- 많은 사람들이 두 국가 해결안은 이미 죽었다고 주장한다. 서안지구 안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을 강제로 추방하고 그들의 토지와 건물을 몰수하면서 이스라엘인들을 위한) 정착촌과 도로가 광범위하게 계속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OZ: 몇 년 전(*2005년) 이스라엘 수상이던 아리엘 샤론이 가자 안에 있던 모든 유대인 정착촌과 군대를 단 36시간 안에 유혈사태 없이 철수시킨 일이 있다. 서안지구에서도 그렇게 되는 게 쉬울 거라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죽음 없이 뭔가를 되돌릴 수는 없다.

- 하지만 정착촌은 이스라엘 우파정부의 강력한 지지층이다. (*그런데도 정착촌 철수 결정을 내리겠느냐.)

OZ: 그 우파정부가 지금 예쉬아티드(*Yesh Atid, '미래는 있다', 현 이스라엘 제2당)라는 중도 및 평화주의 성향의 정당에 의존하고 있다. 우파정부의 미래 결정권이 이 이 정당의 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 계속 장기적 해결안만을 말씀하신다. 당장의 협정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OZ: 지금의 적대는 불행하게도 양쪽 중 하나 또는 둘 모두가 지쳤을 때에나 멈춰질 것이다. 오늘 아침 나는 하마스 헌장을 정독했는데, 거기엔 선지자가 모든 무슬림에게 세계 모든 곳에서 모든 유대인을 죽이라고 명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시온장로의정서를 인용하면서 유대인들이 국제연맹(*유엔의 전신)과 유엔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유대인들이 두 세계간의 전쟁을 야기했으며, 전 세계가 유대인들의 돈에 통제되고 있다고도 쓰여있다. 이걸 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화해가 이뤄질 가망이 없다. 나는 평생 화해를 믿고 따른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도 차마 하마스에 다가가 '우리 중간에서 합의하자, 이스라엘은 월수금에만 (*그 땅에) 있겠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 지금 하마스의 요구는 (*그런 게 아니라) 가자 국경 봉쇄를 해제하라는 거다.

OZ: 나도 봉쇄 해제를 지지한다. (*가자지구가) 실질적인 무장해제를 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국제사회, 아랍권, 이스라엘의 자원들이 가자지구에 보내져야 한다. 이스라엘이 당장 해야 하는 제안은 이런 거다.

- 그건 하마스에게 로켓공격이 압박의 유용한 수단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처사 아닌가?

OZ: 만약 가자지구의 실질적인 무장해제를 끌어낼 수 있다면, 이스라엘 유대인의 80% 이상이 그런 식의 협상에 동의할 게 확실하다. 지금처럼 호전적인 분위기에서도 말이다.

- 당신은 터널과 로켓시설 파괴라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이스라엘이 지금의 공격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85%의 이스라엘인들에 속하는가?

OZ: 이스라엘이 군사작전을 이어가지 않고 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뿐이다. 다른 뺨을 내미는 것 말이다. 나는 적에게 남은 뺨까지 내밀어야 한다는 예수의 뜻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유럽의 평화주의자들과 달리, 나는 전쟁이 절대적인 악이라고 믿지 않는다. 궁극적인 악은 (*선제) 공격이다. 불행하게도 공격을 격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력이고 말이다.
이게 유럽 평화주의자들과 나같은 이스라엘 평화주의자들의 차이점이다. 내 얘기를 덧붙이자면, 테레지엔슈타트(*체코의 나치 강제수용소) 생존자인 내 친척 중 하나는 1945년에 자신을 구해준 것이 플래카드와 꽃을 든 평화 시위대가 아니라 군인과 기관단총이었다고 자녀와 손주에게 늘 이야기한다. 

- 계속되는 적대가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OZ: 아주 나쁜 영향이다. 혐오, 비통, 의심, 불신을 키운다. 하지만 전쟁이 다 그렇다. 흔히 감상주의자들은 어떻게든 적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결국엔 화해하고 평화를 이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를 본다면 그런 일들은 언제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됐다. 적들은 서로 비통과 증오심에 가득 찬 채로 이를 악 물고 복수를 다짐하며 평화협정문에 서명한다. 그러고나서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점차 그런 감정이 사그라지는 것이다. 

- 50년 전에 당신은 "피할 수 없는 점령도 타락한 점령이다"라고 썼다.

OZ: 내가 나 자신에게 항상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이 문구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한다. 점령은 피할 수 없는 경우라고 해도 부도덕한 것이다. 잔혹함, 애국광기, 편협함, 외국인혐오증은 갈등과 점령에 따르는 흔한 증후군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점령은 더 이상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 본래 인터뷰를 "어떻게 지내는가?"로 시작하려 했다.

OZ: 개인적으로 나는 안녕한 상태가 아니다. 병원에서 세 번의 수술을 받고 막 퇴원했으며, 집에서 계속되는 공습경보를 접하며 천천히 회복하고 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우리는 피난소로 이동해 몇 분간 기다리며 다음 경보가 울릴 때까지 목숨을 부지하고자 애쓴다.

- 입원해 있을 때는 피난소에 갈 수 없었겠다. 끔찍하다.

OZ: 괜찮다. 나는 지금껏 오래 살았고 전장 경험도 두 번이나 있다. 단 손주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 이스라엘인들은 스스로가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가?

OZ: 유대인들이 지구상에서 안전함을 느낀다고? 지난 20년이나 50년간은 그렇지 않았고, 지난 2000년 동안도 아니다. 대신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나의 소망과 기도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지구상 모든 신문들의 1면에서 사라질 날을 보고 싶다. 그 대신 신문의 문학, 예술, 음악, 건축 면을 이스라엘이 정복하고 점령하고 거기에 정착촌을 건설하는 날을 보고 싶다. 이게 나의 꿈이다.

덧글

  • 2015/11/02 11:5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오케이컴 2015/11/02 15:25 #

    예..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관심 갖고 읽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더 감사하게도 번역 지적을 해주셨는데요.. 비공개 댓글은 저만 볼 수 있으니 이 내용만 여기 공개하도록 할게요. 고맙습니다.

    1) "이전 가자 전투 때에도 나중에 입장을 그렇게 바꿨다."
    -> "그 이후[2009년 등]에도 그랬다." 정도가 아닐까 싶고요.
    2) "당신은 누구인가?" ->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가 아닐까 싶어요!

    => 1) 오즈가 말한 시기는 질문자가 직접 2009년이라고 명시하였고, 제가 해당 질문에 빨간색으로 부연했듯이 2008-9년 침공 당시 오즈가 침공에 찬성했다가 2주 뒤 휴전을 요구한 사건이 잘 알려지기도 해서요. (물론 2012년에도 폭격이 있었으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많은 사람들이 2008-9년과 2014년의 폭격만을 거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did later on in the previous fighting in Gaza'는 '앞선 가자 싸움에서', 즉 2008-9년 당시에는 '나중에 그랬다', 즉 처음엔 안 그랬지만 나중에 입장을 바꿨다'.. 저는 이렇게 해석한 건데, 틀릴까요?
    2) 제가 how를 who로 잘못 본 게 맞습니다;;

    이 사람의 정신세계를 제가 다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오히려 다른 부분들에서 더 큰 오역이 우려됩니다. 혹시 더 발견하게 되시거든 언제든 댓글 달아주세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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